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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겸이tv 아무거나 첼린지 김창겸입니다. 

 

한국사를 공부하시다 보면 사화라는 표현이 나옵니다. 훈구파와 사림파의 싸움을 말하죠.  크게 4번의 사화가 있었습니다.  

무오사화(연산군), 갑자사화(연산군), 기묘사화(중종), 을사사화(명종)의 4번의 사화 이후 1547년 정미사화라고도 불리는 사화가 한 번 더 있었습니다. 

 

중종의 뒤를 이어 인종이 어린 나이에 즉위하였을 때 인종의 외삼촌이었던 윤임이 권력을 잡게 됩니다. 이들은 대윤이라고 합니다. 그런데 인종이 재위 8개월만에 죽게되면서, 나이 어린 명종이 즉위하게 됩니다. 

이 때 명종의 생모인 문정왕후가 수렴청정을 하게 되는데, 문정왕후의 동생이었던 윤원형이 권력을 장악하기 시작합니다.  이러한 윤원형 중심의 세력을 소윤이라고 합니다.  소윤들은 대윤 세력들에게 역모를 씌워 숙청하였고, 이 때 사림들도 함께 처벌을 받게 됩니다. 이를 을사사화라고 합니다.  

사화의 원래 정의는 훈구파와 사림파의 싸움인데, 을사사화는 엄밀히 이야기하면 왕실 외척간의 갈등입니다. 소윤 세력이 대윤 세력을 제거한거죠. 이 과정에서 대윤과 친하게 지냈던 사림들이 함께 처벌받은거구요. 

 

이때 경기도 과천의 양재역에서 익명의 벽서가 발견됩니다. 

 "위로는 여주(문정왕후를 말합니다), 아래로는 간신 이기(소윤 세력)가 권력을 장악하니 곧 나라가 망할 것이다" 라는 내용의 벽서입니다. 소윤 세력을 비방한 벽서인거죠. 

이에 윤원형은 을사사화 때 대윤 세력을 완벽하게 제거하지 못했기 때문에 이런 일이 벌어졌다고 주장을 하면서, 살아남은 대윤 세력들을 추가로 처벌하게 됩니다. 이게 바로 1547년 정미사화입니다. 대윤 일파가 완전히 몰락하게 된거죠. 

 

쉽게 요약하면 정미사화는 을사사화의 연장선에 있었던 사건입니다. 이러한 사건의 배경으로 작용된 사건이 양재역 벽서 사건이구요. 

 

익명의 양재역 벽서 사건은 "당시 집권 세력인 문정왕후와 소윤(윤원형 세력)을 비방한 글인데, 이것 때문에 대윤 일파가 소윤 세력에게 다시 한번 공격을 당하고 완전히 몰락하는 계기가 된 사건"입니다.

 

(나중에 선조 이후 벽서사건 자체가 무고임을 인정하게 됩니다. 그렇다면 대윤 세력을 다시 처벌하기 위해 날조한 사건으로 볼 수 있겠네요. )

윤임일파 대윤...윤원형 일파가 소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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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겸토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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